본문 바로가기

문학 그리고 음악/좋은글 모음

[책]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책소개

《오베라는 남자》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전작에서 이웃과 사회와의 화해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일곱 살 소녀의 눈을 통해 케케묵은

가족 간의 갈등을 풀고, 늘 남을 위해 살다 온전한 자신을 찾아나서는 여자의 이야기를

가슴 벅차게 그려냈던 저자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따뜻한 감성과 유머가 집약되어 있는 작품이다.

하루하루 기억이 사라져가는 걸 느끼며 초조해하는 한 남자와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손자를 잇는

삼대가 얽힌 아름답고도 섬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의 어느 한 순간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현재가 녹아내리며 완전히 놓아버릴 때까지의 순간들이 천천히 이어진다.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은 손자와의 이별에 아쉬워하고, 점점 작아져가는 머릿속 기억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사별한 아내를 향한 그리움, 그리고 평생 데면데면하게 지내왔던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며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기 위해 분투한다.

자신이 죽기도 전에 기억을 잃어가며 사랑하는 손자를 떠나야 한다는 걸 무슨 수로 설명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그는 먼저 자신을 떠난 아내의 정원을 가득 채우던 히아신스의 달콤한 향기가 나는 그 특별한 공간에서

아무 두려움 없이 세상과 작별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리고 그를 놓을 방법을 찾아야 함에도 정성껏 보살피는

가족들의 슬픔, 그 속에서 찾아가는 기쁨과 희망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울림을 주고,

언젠가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책 속으로

지금이 제일 좋을 때지. 노인은 손자를 보며 생각한다.
세상을 알 만큼 컸지만 거기에 편입되기는 거부할 만큼 젊은 나이.

벤치에 앉아 있는 노아의 발끝은 땅바닥에 닿지 않고 대롱거리지만, 아직은 생각을 이 세상 안에 가두지 않을 나이라 손은 우주에 닿는다.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어른답게 굴라고 잔소리를 하던 사람들이 포기할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어른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런데 그 나이 역시 나쁘지는 않다. _본문 10~11쪽

할아버지는 손자의 이름을 남들보다 두 배 더 좋아하기에 항상 ‘노아노아’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는 한 손을 손자의 머리에 얹지만 머리칼을 헝클어뜨리지 않고 그냥 손가락을 얹어놓기만 한다.
“무서워할 것 없다, 노아노아.”
벤치 아래에서 활짝 핀 히아신스들이 수백 개의 조그만 자줏빛 손을 줄기 위로 뻗어 햇살을 품는다. 아이는 그게 무슨 꽃인지 안다. 할머니의 꽃이고 크리스마스 냄새가 난다. _본문 17쪽

“우리에게는 영원이 남아 있어요. 아이들, 손자들.”
“눈 한번 깜빡하니까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전부 지나가버린 느낌이야.”
그가 말한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린다.
“나랑 평생을 함께했잖아요. 내 평생을 가져갔으면서.”
“그래도 부족했어.”
그녀는 그의 손목에 입을 맞춘다. 그의 손가락에 뺨을 댄다.
“아니에요.”
두 사람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그는 그 길을 예전에도 걸어본 듯한데 그 끝에 뭐가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_본문 27~28쪽

“매일 아침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점점 길어질 거예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이유는 당신의 머리가,

당신의 세상이 남들보다 넓었기 때문이에요. 그게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견딜 수 없을 만큼 당신이 보고 싶어.” _본문 98쪽

“그리고 계속 글을 쓰래요! 한번은 선생님이 인생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쓰라고 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함께하는 거요.”
할아버지는 눈을 감는다.
“그렇게 훌륭한 대답은 처음 듣는구나.”
“선생님은 더 길게 써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니?”
“이렇게 썼어요. 함께하는 것. 그리고 아이스크림.”
할아버지는 잠깐 생각하다가 묻는다.
“어떤 아이스크림?”
노아는 미소를 짓는다.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_본문 114쪽

“아니, 죽음은 느린 북이에요. 심장이 뛸 때마다 숫자를 세는.

그래서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실랑이를 벌일 수가 없어요.” _본문 1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