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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넘고 강건너 /국내여행

백담사,오세암

- 프롤로그 -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다녀온 오세암,영시암,그리고 백담사

오세암 인근에 있으면서 가보진 못한 봉정암,산행길에 있는 산사를 보면서

진정으로 불심과 진정성이 없으면 가보지 못할 오세암

그리고 여전히 세속에 한참을 노출되었던 백담사를

간략하게 이야기 합니다

 

      오세암

              오세암은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법사가 창건하여 수많은 고승들을 많이 배출하였으나

           오세암이라는 이름이 잘 알려지게 된 건 고려때 설정대사가 암자를 증수하고 어린 조카를

           데려와 양육하던중 한해 겨울 양식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간사이에 폭설로 인해 어린 조카가

           혼자서 겨울을 나면서 관세음보살을 만나서 득도 함으로서 오세암이라고 하였다고함

 

 

 

 

 

 

 

 

 

 

 

         영시

            백담사의 부속암자로 그 모양이 발을 쳐 놓은 것 같다고하여 이름이 붙은 수렴동 계곡내 백담리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전쟁 때 폐동되었다고 하는 영시동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로서

            영시 (永矢)는 영원히 쏜 화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이 영시암은  장희빈 사건때 남인이 서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재 집권하는 기사환국으로  부친

            김수항이 죽음을 땅하자 아들 김창흡이 영원히 세상과의 단절을 맹세하는 뜻으로 이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6년째 되던해에  찬모가 호랑이에게 물려가자 삼은은 스스로 암자를 불사르고 설악산을

            떠나  수춘산으로 가버렸으며 그 후로 이마을은 호식동으로 불렸다고 함

 

 

 

 

     백담사

    백담사는 한용운의 백담사사적기에 신라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하고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였다고한다.

    한계사로 창건후 운흥사,심원사,선구사,영취사로 불리다가 후에 백담사라 개칭하였으며 전설에

    의하면 백담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나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수심교(물이깊어서 수심교가 아니라 마음을 닦는 다리 라는 뜻임)

강돌을 모아 탑을 쌓은 모습이 장관을 이룸

수많은 사람들이 발디딜곳도 없이 소원을 기원하면서 ...

 

각 사찰마다 템플스테이를 열어 운영하고 있지만

특이 이곳은 만해 한용운님의 발자국이 남겨져있어 그 의미를 더해 주네

          

 

 

 

 

 

 

 

 

산사에서의 따뜻한 차 한잔의 맛 !

긴 산행에 쫓겨 차한잔 음미도 못하고 차 시간에 맞춰가느라 아쉬움만 더하네

 

 

 

 

여기가 전두환 전대통령이 묵었던 곳

최고의 권력자 자리에 있다가 이렇게 단칸방 사찰에

머물러 있으려니 그 심경이 어떠했을까  그 불심이야 어떻게 측정할 수는 없지만

마음의 수양과 단련은 대단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