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과예술 그리고 음악/문화&예술 공연

"언어의 온도" 중에서

 



 


- 말의 무덤 언총(言塚)-

 

 

그런 날이 있다.

입을 닫을 수 없고 혀를 감추지 못하는 날,

입술 근육 좀 풀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날.

그런 날이면 마음 한구석에서 교만이 독사처럼 꿈틀 거린다.

 

내가 내뱉은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보태게 되고

상대의 말보다 내말이 중요하므로

남의 말꼬리를 잡거나 말허리를 자르는 빈도도 높아진다.

필요 이상으로 말이 많아지는 이른바 다언증(多言症)이 도질 때면

경북 예천군에 있는 언총이라는 말무덤을 떠올리곤 한다

달리는 말(馬)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言)을 파묻는 고분이다

 

언총은 한마디로 침묵의 상징이다

마을이 흉흉한 일에 휩싸일 때마다 여러 문중 사람이 언총에 모여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하는 쓸데없는 말과

"그쪽 걱정돼서 하는 얘기인데요..."처럼

이웃을 함부로 비난하는 말을 한데 모아 구덩이에 파묻었다.

말 장례를 치른 셈인데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툼질과 언쟁이 수그러 들었다고 한다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 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의 총량에 관해 고민한다

다언(多言)이 실언 (失言)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언어의 온도 "이기주님의 글 중에서-